팬들의 알 권리와 선수들의 사생활 침해

팬들의 알 권리와 선수들의 사생활 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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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의 알 권리와 선수들의 사생활 침해


2016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정유라의 입시 부정 논란이 일던 때였다. 당시 정유라는 이화여자대학교 체육대학에 부정 입학한 사실과 더불어 재학 중에도 부정한 방법으로 성적을 올렸던 사실이 드러나 전 국민의 분노를 샀다. 교수가 대리 수강신청을 하고, 결석을 문제 삼지 않으며 과제의 수준이 굉장히 낮은데도 높은 학점을 받은 것이 문제시되었다.

이때, 아무도 예상치 못한 피해자가 나왔다. 바로 피겨선수인 김연아 선수였다. 김연아 선수가 고려대학교에 재학하던 시절, 국제대회에 나가 우승을 하고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F 학점을 받았던 일이 재조명된 것이다. 정유라 측이 주장한 '국내, 국제대회 참여 시 과제 대체 출석 인정' 등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게 된 사례이자 김연아 선수, 고려대학교 측이 지금까지 정상적인 기조를 유지해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하지만 과연 김연아 선수의 학점이 공개된 것이 바람직할까? 이 사례에 대한 김연아 측의 입장발표는 찾기 힘들지만, 본인의 좋지 못한 학점 공개는 충분히 민망했을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권리의 종류는 다양하다. 하지만 여러 권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모두 동일하다. 사람들의 인권을 충족시켜주어 그들의 삶이 인간이라는 하나의 존재로서 존중받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 방향성, 목표가 같음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에서 권리끼리 경합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국민의 알 권리', '표현의 자유'와 '사생활을 보호 받을 권리'의 상충이다.

우선 국민의 '알 권리'는 국민 개개인이 정치·사회를 비롯한 현실 등에 관한 정보를 자유롭게 알 수 있는 권리, 혹은 이러한 정보에 대해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알 권리는 민주주의의 발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기존에는 어떠한 사상, 의견 등을 이야기하는 권리를 보장하면 당연히 그 사상과 의견을 듣는 사람들의 권리 또한 보장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신문, TV 등의 정보전달 수단이 일방적이고, 경우에 따라 정부 혹은 방송국에서 제공하고 싶은 정보만 제공하는 등 국민에게 제공되는 정보들이 제한될 여지가 충분했다. 실제 과거 군부독재 시절에는 언론 탄압을 통해 독재자가 원하는 정보만을 신문에 실을 것을 강제하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국민들 스스로가 정부, 정보제공 기관에 정보를 요청하거나 공개하기를 요구하는 권리인 '알 권리'가 대두되었다. 이는 지금까지 수동적으로 주어지는 정보를 받아들이던 수용자가 적극적으로 정보를 찾아내는 능동적 주체로 탈바꿈하게 되도록 만들었다. 결국 알 권리는 인간이 하나의 독립적인 인격체로서 그 인격을 형성, 발전하는데 필요한 진실과 정보를 위해 필요한 사상, 의견 등을 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알 권리는 헌법상 명문화 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국민주권, 표현의 자유, 인간의 존엄성, 행복추구 등을 근거로 국민의 알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알 권리를 인정하도록 하는 근거가 다양한 이유는 알 권리의 내용이나 기능이 넓고 다양하기 때문이며 그 범위를 한정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헌법상 규정되어있는 다양한 인권, 기본권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관련 지식, 정보 없이는 실질적으로 실현되기 어려우므로 국민의 알 권리는 곧 모든 인권의 기본적인 전제라고 볼 수 있다.

알 권리는 정보수령권과 정보수집권으로 나누어진다. 정보수령권은 제공되는 정보를 인지하거나 소지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하는데, 언론매체, 정부의 보도 등을 통해 일방향으로 전달되는 정보를 수집, 취사선택 하는 소극적인 권리를 말한다. 정보수집권은 한 개인이 스스로 정보를 얻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행동하는 것에 대한 권리이다. 정보수집권은 공권력 등에 방해받지 않을 권리와 공권력에 대한 정보의 공개 청구를 모두 포함한다.

 

알 권리와 함께 자주 언급되는 권리는 표현의 자유이다. 표현의 자유는 헌법상 명시되어 있는 권리다. 헌법 제2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언론, 출판의 자유는 표현의 자유의 대표 격으로 사상과 의견을 자유롭게 표명, 발표할 수 있고 그것을 자유롭게 전파할 수 있는 권리이다

표현의 자유 또한 민주주의의 발전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민주주의에서 국민들은 투표권 행사를 통해 그들의 주권을 행사한다. 이때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형성, 전달하는데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언론이고, 건전한 여론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이 언론이 본인들의 전달하고 싶은 바를 자유롭게 전달할 수 있어야 했다. 언론 보도는 정당, 정책에 대한 적극적인 비판과 토론을 가능하게 했고, 정치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도출해냈으며 이는 국민들의 정치참여라는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다시 말해 언론, 출판의 자유는 국민들이 정부의 정치를 감시하고, 권력자에 대해 자유로운 비판을 할 수 있으며, 동시에 소수의 의견 또한 경청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등, 민주제의 참모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권리이자 자유이다.

이렇듯 알 권리는 공권력의 불투명한 정책, 권력행사 등을 지양하고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을 찾고자 시작됐다. 즉 개인과 국가 사이의 관계를 규율하는 권리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사회가 변하며 그 범위가 개인과 개인 간 관계까지 확장되고 있다. 그리고 그 범위를 넓혀 스포츠 스타, 연예인들의 삶까지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본인들의 욕구를 정당화하기 위한 하나의 명분으로 사용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김연아 성적표의 경우 외에도 그러한 사례들을 찾아보기는 어렵지 않다. 김연아 선수와 아이스하키선수인 김원중 선수 간의 데이트 사진이 찍혀 연애 사실이 드러났던 사례, 배드민턴 선수인 이용대 선수와 일반인 여자친구간의 데이트 사진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던 사례, 축구선수 기성룡 선수가 개인적인 SNS에 비공개 글로 당시 국가대표 감독이었던 최강희 감독을 조롱했던 일이 외부로 밝혀졌던 사례, 야구선수들이 성적이 부진할 경우 그들의 사적인 시간 때 즐긴 여가활동(클럽, 술자리 등) 등을 들먹이며 그들을 비난한 사례 등 무궁무진하다.

선수, 연예인들에 대한 이러한 일련의 관심은 '사생활 침해', '인격권 침해'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스포츠 선수들, 연예인들의 사생활이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그들이 이제 공인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기존 정부 관리, 사회적 주요 인사로 시작된 공인의 개념은 그 범주가 더욱 넓어졌고, 이제는 미디어 노출이 잦은 스포츠 스타, 연예인, 심지어 아나운서까지 공인으로 불리고 있다.

공인의 경우, 일반인들보다 사생활 보장의 범위가 더 좁아진다는 특징이 있다. 공인이 되는 것은 대중들의 관심을 받겠다는 의미이고, 이는 곧 사생활의 일정 부분은 공개하겠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용인한다고 간주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공인에 관련된, 그리고 공익과 관련된 영역에서의 사생활 보도는 용인되고 있다. 실제 우리나라 대법원에서는 '공적 인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가 제한되어 그 공개가 면책되는 경우도 있다'라고 판시하며 유명인의 사생활을 공개한 자들을 처벌하지 않은 사례들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공인들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공인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고, 한 국민이다. 즉, 우리가 보장받는 기본권은 공인도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헌법은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제10조).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제17조). 언론·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 된다. 언론·출판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한 때에는 피해자는 이에 대한 피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제21조 제4항)."

우리의 알 권리가 우리의 인권이자 민주주의의 토대가 되는 기본권이듯, 스포츠 스타를 비롯한 유명인들의 행복추구권, 사생활을 비밀로 할 수 있는 권리 또한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지키기 위한 기초적인 권리이다. 인권 간의 충돌인 만큼, 섣불리 어느 한 권리가 더 중요하고 우선시해야 한다고 단언하기는 힘들다. 현재 우리나라 법률에서는 공인에 대한 기준과 그 보도의 공익성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제시되어 있으며, 실질적인 법률 공방에서는 사건별로 알 권리, 표현의 자유로 얻어지는 사회적 이익과 개인의 사생활, 인격권을 보호함으로써 얻어지는 가치를 비교하여 사회적 이익이 어느 쪽이 더 큰지에 따라 판단한다.

일반적으로 개인의 사적 관계에 대한 정보 공개는 표현의 자유보다는 사생활, 명예 보호라는 인격권을 더 우선시한다. 표현의 자유가 우선시되는 것은 그 표현이 공적, 사회적, 객관적 성격을 띠고 있어야 하며, 민주주의의 발전이나 최소한 민주주의의 후퇴를 막기 위한 경우에 한해야 하기 때문이다.

혹자는 공인의 연애, SNS, 개인적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등 일거수일투족 모두가 공개되어야 하며 이는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제시한 '널리 국가, 사회 기타 일반 다수의 이익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특정 사회집단이나 그 구성원 전체의 관심과 이익에 관한 것', '공인이나 공적 기관의 공적 활동에 부합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스포츠 스타의 사생활을 감시하기 위해 수십 명의 사진기자가 일상에 따라붙고, 주변인들과만 소통하기 위해 비공개로 올린 글을 공론화시키는 것이 공공의 이익과 공공의 관심을 위한 공적 활동이라고 볼 수 있을까? 스포츠 스타의 공적 활동은 선수가 '선수'로 있을 때로만 한정해야 한다. 그가 경기장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 그가 훈련을 어떻게 하는지, 어떠한 팀으로 이적하는지 등은 '선수'로서의 모습인 만큼 공적 활동으로 간주될 수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정보는 우리의 알 권리를 위해 공개를 요구할 수 있고, 미디어는 시민의 알 권리충족을 위해 보도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연애, 학교 성적, 개인 SNS 등은 선수가 아닌, 하나의 개인으로서의 활동이며 이는 우리가 절대 침범해서는 안 될 사생활의 영역이다. 그들도 유명인이기 전에 한 국민이고, 한 인격체이다. 누구나 자신의 사생활을 보호받고 싶어 하듯 그들의 사생활 또한 지켜주어야 한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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